2002 상해편지

[상해편지8] 산동의 다혈질 아저씨, 쏭쥔(宋軍)

kmlee1 2024. 12. 1. 11:14

 

 

소학에 다니는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맞자 가족 모두 배낭 하나씩을 메고 여행길에 올랐다. 상해를 벗어나 중국의 여러 도시와 농촌을 여행하며 중국의 역사와 자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일자 : 6. 30~7. 26 

이동 경로 : 상해→태안→곡부→추성→태안→제남→북경→승덕→북경→호화호특→포두

             →호화호특→서안→낙양→정주→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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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즐겨 쓰는 문구 가운데 인걸지령(人傑地靈)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인걸은 땅의 영기를 받아 태어난다는 뜻이지만, 지방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기질을 이야기할 때도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우리나라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사람들의 성향을 두고서 경상도 기질이니, 전라도 기질이니 하곤 하는데 남한의 98배나 되는 이 넓은 중국 땅에 지방에 따른 기질의 차이가 없을 리 없다.

 

산동성은 한국 관광객이 특히 많이 찾는 곳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자의 고향인 곡부, 맹자의 고향인 추성이 이웃해 있고(곡부와 추성은 20 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곡부에서 80 킬로미터쯤 가면 양사언이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라고 읊조렸던 그 유명한 태산이 있으니 땅은 중국 땅이지만 한국의 어느 한 곳 쯤으로 착각할 만큼 정서적으로 친숙한 곳이다.

 

그 산동성에서 우리는 좀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지금은 산동인의 기질과 관련된 작은 에피소드로 떠오르지만 그 당시로는 꽤나 긴박했던 순간이었다. 이제 그 이야기의 주인공, 산동의 다혈질 사나이 쏭쥔을 소개한다. 

 

♧ 6 : 30  발단 ♧ 

 

잉쭈어 기차로 13 시간을 꼬박 앉아 간 끝에 드디어 태산역에 도착했다. 한여름의 열기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시각. 우리 가족은 밤새 뻣뻣해진 다리를 털며 기차에서 내려 출구로 향했다. 

 

먼저 어디든 숙소부터 잡아 세수라도 제대로 좀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서둘러 역사를 빠져나오자 곧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쌌다. 옷깃을 당길 듯이 가까이 선 일단의 호객꾼들은 숙소와 차량을 소개하는 종이 쪽지를 우리 코앞에 들이대고서 제각기 동시에 외쳐대었다. 

 

나부끼는 대여섯 개의 흰 종이 조각 사이에 검은 자동차 열쇠 하나가 보였다. 우리는 지난 몇 번의 여행에서 터득한 어설픈 방법대로 ‘뿌야오’를 크게 외치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의 서슬에 눌린 종이 쪽지들은 하나 둘 물러서고 있었으나 검은 열쇠는 사라지지 않았다.

 

키가 거의 190 센티미터에 가까운 거구였다. 어깨가 쫙 벌어진 건장한 체격에 짧은 스포츠 형 머리, 구리 빛 피부의 남자는 벌써부터 얼굴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태도가 남달랐다. 그 큰 상체를 거의 90 도 각도로 내리고 깊숙이 숙인 머리 위로 두 손을 높이 올려 예의 검은 열쇠를 우리에게 바치는 자세를 취하였다. 순간적으로 ‘큰 형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깍두기 머리 청년’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아이들은 그의 팔뚝에 새겨진 칼 문신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 열쇠를 피하여 아이 손을 당겨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를 따돌리고자 역 광장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호텔 하나를 찾아 들어가는데 그도 우리 뒤를 따라 들어왔다. 마침 그 곳은 외국인을 받을 수 없는 곳이었다. 우리는 별 수 없이 나와야 했고 그는 계속 자신의 차로 자신이 소개하는 숙소에 갈 것을 간절히 청하며 우리가 어디를 가든 놓치지 않았다. 

 

이제 우리 일행은 5명이 되어버렸다. 위기감을 느낀 나는 이 뜻밖의 난적을 향해 거의 악을 쓰듯이 ‘뿌야오!’를 되풀이했다. 웬만한 사람들은 나의 이 정나미 떨어지는 고함 소리를 듣고는 다 사라지는데 그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아예 나를 젖혀놓고 상대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도 작은 체구는 아니지만 이 끈질긴 사내의 상대는 되지 않아 보였다. 남편은 가타부타 말도 않고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긴장이 감도는 얼굴로 무슨 궁리인지 골똘히 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애가 탔다. 아이의 손에서도 땀이 배어 나왔다. 

 

그 사내는 연신 땀을 흘리고 있었다. 땀을 주체못하며 헐떡이는 그 모습에 웬지 모를 일말의 안도감을 느끼는 순간도 잠시, 그는 어느새 자기 차를 불러 놓았다. 여자 하나가 웃으며 다가왔는데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중국에서 그런 헤어스타일을 한 여자는 처음 봤다.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깎았는데 층을 많이 내어서 쭈빗쭈빗 했으며 말총처럼 머리 꼬리를 길게 기르고 있었다. 이제 차까지 동원되었으니 어떻게 되는가. 여자는 차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고 섰고 이 건장한 체구의 남자는 계속 우리에게 청을 넣고 있었다. 그때였다. 다행히 멀리서 택시 한 대가 오는 것이 보였다.

 

♧ 7 : 00  위기 ♧

 

우리는 황급히 차를 세우고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이 남자는 아이들이 들어가려는 차 뒷문을 손으로 잡아버리는 게 아닌가? 남편은 고함을 치고 아이들도 비명을 질렀다. 나도 제 정신이 아니었다. 있는 힘껏 그를 밀쳐내고 아이들을 차안으로 밀어 넣었다. 평소 내성적인 우리 아이들도 분명한 중국어 발음으로 똑똑하게 운전수에게 ‘아저씨, 빨리 출발하세요.’ 번갈아 외쳤다. 

 

우리 가족 좌석 쪽의 문이 닫히자 그는 어느새 앞쪽으로 가서 운전석의 문을 열고 운전사를 향해 뭐라 소리치는 것이 마치 그를 끌어내릴 듯한 기세였다. 당황한 운전사도 뭐라 대꾸를 하며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닫았다. 그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자기 차로 돌아갔다.

 

말 없이 차를 출발시키는 기사를 바라보며 겨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갑자기 큰 아이가 소리쳤다. 

“엄마, 저 차 계속 우리 따라 와요.”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맙소사, 그의 차가 전속력으로 우리 택시를 따라오고 있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다는 말인가.

 

중국 생활 4 개월 간 별 탈 없이 잘 지냈는데 여기 와서 이런 일을 당하다니, 상해에 그대로 있을 것을 이 여행을 왜 가자고 했던가, 지금 호텔이 아니라 경찰서로 가야하는 게 아닌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 추격전은 난생 처음 당해보는 무서운 경험이었다. 범죄 드라마에서 보았던 상황이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다니... 아이들은 떨고 있었고 나는 앞자리에 앉은 남편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처음부터 나처럼 고함을 지르고 강하게 나갔어야지 우유부단하게 굴다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그는 나의 항의에도 입을 굳게 다물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택시는 거리를 달려 어느 호텔의 입구로 들어섰다. 세 사람이 탄 뒤차는 여전히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우리를 실은 차가 호텔 문 앞에 서자 직원이 차 문을 열어 주었다. 나와 아이들은 차에서 튕겨 나오듯 뛰쳐나와 재빨리 호텔 문을 밀었다.

 

♧ 7 : 20 대치 ♧

 

예전처럼 호텔의 시설을 꼼꼼히 따져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방만 있다면 묵으리라 내심 작정하고 들어갔다. 1층 안쪽의 방을 하나 배정해주기에 남편이 수속을 하는 동안 방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다렸다. 일을 처리하고 방으로 들어온 남편은 별일 없을 거라며 우리를 진정시켰다. 

 

조금 뒤 남편이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밖에 나가 보려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라고 남편이 만류했지만 나도 같이 일어섰다. 우리가 도착한 지 30 분이 넘게 지났는데도 그들은 아직 이 호텔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말총머리 여자는 호텔 안으로 들어와서 카운터의 직원을 붙들고 뭔가 이야기하고 있었고, 문 밖에 택시 옆에는 그 남자가 서성이고 있었다. 직원과 이야기를 끝낸 여자는 호텔 문을 열고 나가더니 아예 계단 아래에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호텔 로비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그들을 돌려보내야겠다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 위험하다고 말렸으나 고개를 가로젓고는 밖으로 걸어나갔다. 나는 카운터 근처에서 몸을 숨기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긴장의 시간이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잘 못하는 중국어 대신 영어로 의사 소통이 될 만한 사람을 눈으로 찾아보았다. 마침 매니저인지 한 사람이 영어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 옆을 떠나지 않기로 했다.

 

♧ 8 : 00  협상 ♧

 

서로 밀고 당기는 듯했다. 한 쪽은 무언가 주려고 하고 한 쪽은 한사코 거절했다. 한 동안 실랑이 끝에 두 사람은 바로 옆에 있는 정원의 큰돌로 자리를 옮겼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 했으나 나뭇가지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그 남자는 몸을 숙이고 황급히 근처에 주차해있는 차 쪽으로 달려가더니 무엇인가를 가지고 나왔다. 차는 곧 떠나고 나뭇가지들 사이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남편이 돌아왔다. 그의 안색을 살폈으나 말 없이 태연한 빛이었다. 방으로 앞장서는 그를 따라 갔다. 내가 문을 두드리며 아이들을 부르자 한참만에 열렸다. 깜깜한 방안에서 놀란 듯이 반기는 아이들. 저희들끼리도 무척 긴장하였나 보다. 커튼을 모두 쳐두고 불을 꺼서 아무도 없는 듯이 보이도록 하려했다는 것이다. 소리가 날까봐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침대에 앉아 있었단다. 만일 누가 문을 두드려서 남자 목소리의 중국어로 ‘빠바(爸爸 아빠)’ 라고 하면 생년월일을 대보라고 할 참이었단다.

 

남편은 우리를 앉혀놓고 자세한 경과를 설명해 주었다. 처음 남편은 ‘당신들 어쨌든 아침 장사를 놓쳤으니 이 차비를 받고 돌아가라’며 10원을 건넸으나 절대로 받지 않더란다. 오히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우리를 안타까워하며 차안에서 영업허가증과 여러 가지 증명서를 들고 나와 보여주더란다.

 

‘당신 아침부터 이렇게 땀을 비 오듯 흘리니 보기 딱하다’며 남편이 그를 달래자 자기 사정을 털어놓더라는 것이다. 차의 운전자는 형이고 말총머리 여자는 그의 형수이며 온 가족이 이 일에 종사하는데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하루 영업을 시작하려고 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과격해졌다며 사과하더란다. 원래 ‘산동따한’ (山東大漢, 다혈질적이고 남성적인 산동 출신 사나이를 일컫는 말) 이란 말이 있는데 그가 바로 그 전형적인 인물인 것 같다고 남편은 설명하였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남편이 가당찮은 제안을 했다. “우리 그 차를 대절해서 곡부와 추성을 다녀오자. 그 사람, 원래 다혈질이라 욱하는 성미가 있어서 그렇지 절대로 악한 사람은 아니다. 하루 대절하여 다녀오는데 200원에 해 주겠다고 한다. 자기가 우리에게 한 짓이 있으니 미안해서 더 잘 해줄 것이고 그런 친구들이 서비스는 확실한 법이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 8 : 35  거절 ♧

 

이럴 수가... 그 위협과 공포의 분위기가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그 차를 타자니. 팔뚝에 칼 문신을 새기고 ‘어깨’처럼 굴던 그의 차를 타자니. 도대체 제 정신인가? 그러나 내가 아무리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러도 그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 요지부동이었다. “우리가 여행을 왜 하는데?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우리 여행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모처럼 독특한 사람을 만났으니 이 기회에 중국인의 기질을 좀 더 깊이 이해해보자.”며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한참 실랑이를 하고 있는 우리를 지켜보던 아이들이 끼어 들었다. “아빠, 그 차 꼭 타야 돼요? 무서워요.” 울먹이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남편은 말없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는 차를 돌려보냈다고 했다. 자식에겐 한없이 약한 부성이었다. 남편 손에 쥐어진 종이를 보니 쏭쥔(宋軍) 이라는 이름과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 8 : 50   번복 ♧

 

아이들이 욕실에서 씻는 동안 나는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그의 얼굴 가득 떨어져 내리던 땀방울이었다. 감정적으로 대처한 나와 달리 가족의 안전을 생각하여 신중한 행동을 취하던 남편에게 그는 한번도 불손하지 않았고 끝까지 사정했으며 내가 차 문을 잡은 그의 손을 밀쳐내자 비켜났었다. 내 체구의 두 배나 되는 그가 힘을 쓰려 했다면 여자 하나 못 당했겠는가? 운전사에게도 위협은 했으나 완력을 쓴 것은 아니었다.

 

생각 속에서 두려움과 분노를 걷어내자 그의 땀 투성이 얼굴과 애원하는 표정이 남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을 잘 이끌고 있는 가장의 판단과 결정을 믿는 것이 옳을 것 같았다. 나는 남편에게 뒤늦게 동의했고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설득했다. 시간이 좀 흘러 안정을 찾을 만한 때에 부모가 안심하라고 달래니 어린 아이들인지라 곧 마음을 돌렸다. 남편은 쏭쥔에게 전화를 걸었다.

 

♧ 9 : 30   종결 ♧

 

그는 어느새 손님을 싣고 곡부에 가 있었다. 아침의 일을 다시 한번 사과하며 다른 사람을 소개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당신 차를 타기 위해 전화한 것이지 다른 차를 소개받기 위해 전화한 것이 아니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한 사람이 서있었다. 그도 스포츠 머리에 쏭쥔 못지 않게 건장한 체격이었으나 표정은 훨씬 부드러웠다. 소개를 거절했음에도 그는 자신의 처남을 급히 보낸 것이다. 역시 집요했다.

 

거의 세 시간에 걸친 우여곡절을 겪은 뒤 맹자의 고향 ‘추성’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들은 쏭쥔은 남편이 파악한대로의 사람이었다.

 

남편이 쏭쥔에 대해 묻자 그의 처남이 전하는 첫 마디가, “그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였다.

다혈질이라 싸움을 많이 하지만 자기 일보다 남의 억울한 일에 끼어들어 싸우기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천성이 착하고 사나이다워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따른다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일대에서는 가장 영업을 잘 하여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럴 것이다. 누가 그의 끈기와 혈기를 당해내겠는가? 

 

우리는 말없는 기사의 조용한 운전으로 맹자 유적지 추성과 공자 유적지 곡부를 잘 다녀왔다. 곡부의 어느 도로변에 주차되어 있는 깨끗한 새차를 가리키며 우리 기사가 이것이 쏭쥔의 차라고 알려주었을 때, 남편은 친구 차라도 본 듯 반가워했다. 아이들을 돌아보며 “봐라, 이 차 타고 왔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품이 마치 그가 옆에 있으면 술이라도 같이 한잔 할 기세였다. 단순한 건지, 대단한 건지 참. 

 

다른 곳의 기사들을 만나고 택시기사와 호텔간의 거래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를 공포스럽게 했던 그때의 상황들에 대한 이해가 명료해졌다. 예컨대 쏭쥔이 우리를 태우려던 기사를 가로막으며 주고받은 이야기는 아마 내가 확보한 손님이니 소개비는 내가 받아가겠다는 것이었을 게고, 우리를 추격(?)한 것은 호텔 측으로부터 소개비를 받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쏭쥔의 형수가 호텔 복무원을 찾은 것도 소개비 때문이었을 것이니 그들의 생존방식이었을 뿐 우리를 위협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그의 타고난 다혈질과 우리의 지나친 경계심이 어우러져 이런 사건을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쏭쥔과의 만남은 우리 가족이 이번 여행에서 처음 봉착한 위기였고 처음으로 접한 당혹스런 중국인의 모습이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떠난 여행의 첫 목적지, 태안에서 겪은 이 일은 아마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혹 다음에 산동에 가더라도 쏭쥔 같은 ‘산동따한’을 만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