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에 다니는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맞자 가족 모두 배낭 하나씩을 메고 여행길에 올랐다. 상해를 벗어나 중국의 여러 도시와 농촌을 여행하며 중국의 역사와 자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일자 : 6. 30~7. 26
이동 경로 : 상해→태안→곡부→추성→태안→제남→북경→승덕→북경→호화호특→포두
→호화호특→서안→낙양→정주→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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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에서 들은 아리랑 ♧
또 무릎이 부딪혔다.
마주 보는 좌석에 앉은 눈 큰 아저씨가 드디어 읽던 책을 내려놓고 잠을 청하면서 그 긴 다리를 내 자리 쪽으로 쫙 펴는 바람에 어디에 발을 놓아야할지 모르겠다. 몹시 불편했다.
초저녁에 차창에 머리를 부딪히며 한 숨 자고 난 후라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자정이 막 지났는데 아직도 컵 라면을 먹는 사람,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하는 사람, 심지어 카드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밤이 깊어지면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코를 고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갔다.
기차는 쉴새없이 어둠 속을 달리고 있고 옆자리의 깨어있는 사람, 잠자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나도 모르게 설핏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차창 커튼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따가운 아침 햇살에 눈을 떴다.
전날 저녁 6시 50분 상해역에서 출발했던 산서성 태원행 잉쭈어는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우리의 목적지인 태산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12시간의 기차여행도 드디어 끝이 나는구나 생각하며 오그렸던 팔 다리, 저린 허리를 펴는데 어디서 난데없이 ‘아라리, 아리이오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국의 아리랑을 편곡한 것도 아니고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고개를 돌려보니 승복을 입고 머리를 깍은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침 예불을 드리는 것이었다. 벌써 세수를 하고 오는 부지런한 사람도 있지만 아직 잠에서 덜 깬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 스님은 별로 미안한 기색 없이 휴대용 녹음기를 크게 틀어놓고 기도를 했다. 수행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법인가 보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통로를 분주히 오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아라리, 아리리이오’는 밤새 달려온 중국 기차의 새아침을 열고 있었다.
우리 아리랑을 길게 늘인 듯한 그 ‘아라리’ 독경 소리. 기차에서뿐만 아니라 각 지의
중국 사찰을 다닐 때 가끔씩 이렇게 우리 귀에 익숙한 음조의 ‘아라리’를 듣곤 했었다.
상해 집에 돌아와 인터넷에서 아리랑에 대해 찾아보았다. 중국에서 우리 한국의 민요와 비슷한 소리를 듣다니 어쩌면 이 ‘아라리’는 동양권 문화의 공통 정서를 자아내는 독특한 소리가 아닐까 여행 도중 궁금증이 일었었다.
정선 아리랑 연구소의 홈페이지에 아리랑 관련 논문 한 편이 실려있었다. 그 속에서 내가 궁금했던 부분의 답을 구할 수 있었다.
…… (略) ……
‘아라리’ 는 아리랑의 의미를 불교적 세계에서 이해하는 입장으로, 그 기원을 신라 박혁거세의 비(妃) ‘알영(閼英)'과 '아리수(阿利水: 압록강)'에 두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아라리'와 고려 속요의 후렴설도 있는데, 이는 고려 시대의 불교 영향이라는 견해다. 곧 아리랑은 불교의 아라리(阿喇利) 또는 아뢰야(阿賴耶)와 관련된다는 것이다. 산스크리트로 아라리는 "세상살이의 무인지경에서 고통과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깨달음의 사유를 보이는, 의미지향적인 면이 강하다. 아뢰야(아리야)는 모든 사물이 일어나는 근원이고, 팔식(八識)의 하나로 해석된다.
…… (略) ……
<이창식-아리랑의 정체성과 현장성 (제7회 정선아리랑심포지엄 발제논문)> 에서
역시 그러하였다. 같은 종교를 가진 동양 문화권 속에는 이렇게 공통된 코드가 들어 있었다. ‘아리랑’은 언어적 구조가 엄연히 다른 한국어와 중국어에서 동일한 음가를 내고 있는 것이다.
상해의 용화사에 들렀을 때 마침 방장 스님이 입적하여 그 절의 주지 스님이 빈소를 차렸는데 각 계에서 보내온 수많은 국화꽃, 스님의 영정과 만장 위로 이 ‘아라리’ 독경 소리가 처연히 흐르고 있었다.
♧ 배에서 들은 아리랑 ♧
6월 중순 쑤저우(蘇州)에 간 적이 있다. 오(吳)나라의 옛 성곽 판먼(盤門)이라는 곳에서 작은 배를 탔다. 배 안에는 우리 가족 밖에 없었다.
뱃사공은 50세가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로 밀짚모자를 쓰고 빛 바랜 바지를 입은 위에 긴 장화를 싣고 있었다. 햇볕에 그을어 검게 탄 얼굴과 깊이 패인 눈 밑의 굵은 주름은 고단한 그의 삶을 드러내는 듯 했으나 ‘내가 노래 하나를 할 테니 들어보오.’ 하며 가지런한 치열을 드러내고 웃으니 꼭 친숙한 우리 이웃집 아줌마 같이 보였다.
얼마나 많이 불렀는지 목소리가 쉬어 있었지만 흐르는 물결 따라 노를 저어가면서 그가 부르는 뱃노래는 무척 애잔하였다. 중국어가 턱없이 부족한 나로서는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잔잔한 가락으로 반복되는 후렴구가 인상적이었다.
‘아라리, 아라리이요’.
우리나라의 아리랑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일을 할 때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의성어일까? 언어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같은 음가를 가진 소리를 낼까? 우리의 민요 아리랑도 서민의 한과 애환을 담은 것인데 이 이국 땅에서 듣는 뱃노래에서도 똑 같은 정서를 느낄 수 있다니...
배에서 내릴 때 노래 값으로 그 뱃사공 아주머니에게 10원을 건네 주었다. 마침 지폐가 없어 동전을 소복이 주었는데 이렇게 팁을 받은 적이 별로 없는 듯 무척 반가와 했다.
걸어나오는 우리 가족 뒤로 또 다른 배에서 부르는 ‘아라리’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중국의 뱃노래 후렴구에 들어있는 그 ‘아라리, 아라리요’.
인터넷에서 찾은 관련 논문에서는 아리랑의 현장성을 지적하였다. 일이 힘들 때 부르는 아리랑은 일터를 놀이터로 만들고 개인사의 서정화까지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 (略) ……
동강 뗏목꾼 정연옥(영월읍 삼옥리) 가창자는 뗏목축제에서 진한 사설의 아리랑을 끝없이 불렀다. 정연옥 가창자는 뗏목시연의 책임자인 동시에 뗏목놀이를 마을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전승자(영월 뗏목축제장, 2001. 8. 5)다.
이들의 생득적 아름다움은 자연을 닮고 강을 닮고 어머니의 모성을 닮았다는 점이다. 물처럼 흐르되 돌아갈 줄 알고 여자로서 그리워하되 오래도록 품으려는 마음처럼 포용력이 살아있는 소리의 엉어리, 녹아 흐르되 뭉치지 않는 속성 이를 '나지미'의 멋이라고 하자. 님의 속성이지만 투박하면서 끈질긴 사랑의 분신 같은 것이다.
아우라지 지장구 아저씨 배 좀 건네주오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고단했던 삶의 강은 노래문학을 통해 흐르고 있다.
…… (略) ……
<상기 논문>
여행 도중 중국의 기차와 배에서 들었던 아리랑은 우리의 아리랑과는 많이 다른 것인지 모른다. 우리의 것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 그네들만의 기호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하고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비교적 유사한 이 곳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최대의 걸림돌은 언어이다. 똑 같은 구강 구조를 가진 사람 입에서 어찌 이렇게 다른 소리가 나올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낯선 소리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제각기 의미를 이루고 있다니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게다가 그들의 정서가 그 수많은 방언에 실리면 이것은 외국 학습자로서는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암호가 되어버리니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서구와는 달리 같은 동양 문화권에 속해 있으므로 양국 언어의 차이점들 가운데에도 분명 몇 가지 공통된 것들이 있을 텐데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찾던 중에 우연히 듣게 된 ‘아라리, 아라리요’는 나의 이러한 생각에 아마추어적 확신을 주었다.
아리랑은 참 나를 깨달아 인간완성에 이르는 기쁨을 노래한 깨달음의 노래이니 불교의 의식에 쓰일 법하고 또한 힘든 노동을 위로하고 더 나아가 이를 유희로 바꾸는 기능이 있으니 뱃노래로 쓰일 법하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는 혼자서 그렇게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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